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1세 (문단 편집) ===== 문제 =====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리처드 1세가 아무리 당대에 있어 사탄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고는 하더라도 성을 혼자서 점령할 수는 없다.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 간략하게 소개를 하다 보니 "단신으로 성을 점령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또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소개되었듯이 전투가 일어나는 중이었고, 80+@명이면 적들은 저게 80명인지 8만 명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리처드 1세가 앞에서 다 썰며 밀고 들어오면 무슬림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가게 되고,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이다. 방어가 굳건한 성을 리처드 1세 혼자서 돌격해서 점령한 게 결코 아니다. 전근대 시대에 소수의 정예병으로 압도적 다수를 물리친 전투 대부분은 이와 비슷한 진행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용맹한 정예병이라고 해도 백 명 내외의 병력이 수만 명과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만 명의 대군 사이로 소수의 정예병이 돌격해 들어오면 당장 그 소수의 정예병과 맞부딪혀 싸우게 되는 인원은 전체 병력 중 극히 일부로 역시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고, 이 일부 병력이 수백 명~잘해야 천여 명 수준이라면 이 국면에 한해서는 소수의 정예병이 압도적 우세를 보이며 기세를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소수 정예병과 충돌한 병력이 붕괴하여 도주하고, 이 모습을 본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함께 패닉에 빠져 도주할 경우 대군 전체의 전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수십, 수백 배에 이르는 대군이면 패닉에 빠져 도주하지 않고 단순히 자리를 지켜 전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소수 적군의 공격을 간단히 격퇴하고 역으로 압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이 모두 정리된 자료를 읽어볼 수 있는 후세의 역사책 독자가 아니라 당장 자기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당대 전투에 참가한 병사 입장에서는 이처럼 전략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만한 정보 자체를 얻을 수가 없으니 주변의 전우들이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하면 당연히 '아이고, 이번 전투는 우리가 졌나 보다' 하고 따라서 도망칠 수밖에 없는 것. 성 위나 언덕에서 대국 전체를 보고 있는 지휘부라면 그나마 전황 전반을 파악하기 쉽겠지만 전근대 전장에서는 지휘부의 전장 파악 능력 자체도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부족했고, 설령 전황을 파악한다고 해도 통신 기술의 한계상 부대들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단 역시 극히 제한적이니 전열의 붕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전근대 전장에서 개인의 용맹성이나 용맹한 지휘관이 큰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당시 군사 기술의 한계상 지휘부가 전 군에 대한 지휘 통제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점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전근대 군사 제도와 근현대 군사 제도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인 [[국민개병제]]의 도입 기반으로 흔히 '총기의 발달과 같은 무기 기술의 진보'를 꼽는 경우가 많지만 '인쇄 기술과 공교육의 도입 등으로 인한 대중의 지식, 교양 수준의 향상' 역시 국민개병제의 성립에 만만찮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전근대 전장에서도 대규모 징집병을 동원하여 병력 우위를 확보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지만, 이런 징집병은 순간적이고 사소한 상황 변화에도 당황하여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신뢰할 수 없는 병력'이었기에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소수의 정예 병력이 전장의 주역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몇 달만 훈련받으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충분히 상대를 살상할 수 있는 총기를 한 자루씩 쥐어주고, 당장 눈앞에 적이 달려들 때 우르르 도망치다 서로 밟혀 죽는 것보다는 제 자리를 지키고 침착하게 응사하는 쪽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만 가르칠 수 있다면(덤으로 국민국가 개념의 도입으로 스스로 싸워야 할 이유를 부여해주면 더 좋다) 대규모의 징집병 역시 충분히 신뢰 가능하고 강력한 군사적 자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천 년간 전장의 주인공이던 정예 병력의 상징인 [[기병]]이 도태되고 대규모 징집군이 전장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물론 20세기 이후, 총기로 무장한 보병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신개념 무기인 [[전차]]가 등장하면서 전장의 주도권 일부가 '다수의 대단위 보병 부대'에서 '기갑 부대 등 소수의 중무장 병력'으로 넘어온 것은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